확증 편향
확증편향 선택편향의 한 종류. 자신의 선입견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반대로, 자신이 믿는 바에 반하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논리에서는 “불완전한 근거의 오류”(the 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와도 통한다. 같은 말로 “내 편 편향”(myside-bias)이라는 용어가 제안되기도 하였다.# 정말 쉬운 한 마디로 말하면 답정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피드백을 얻기를 열망하고 이끌어내려 한다. 연구자들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데, 거만한 자기상을 가진 사람이 파티에 도착하면,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지인들을 찾고, 대화 중에는 존경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관점과 영향력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파티 후에 그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이 약했던 대화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배했던 대화의 내용과 그 설득력에 대해서는 훨씬 잘 기억하게 된다. 확증편향이 자기상을 확증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정부 내각들, 기업들, 군 지휘관들, 단체장들, 개인들이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져서 많은 실수들을 저질러 왔다.[1]예를 들어, 기업가들은 최선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최신의 경영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마케팅 전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최신의 경영 시스템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과 의견이 유사한 다른 논객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모임을 갖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자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이는 평범한 유권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A당의 경제정책에 깊이 동의하는 사람은 그 경제정책이 성과가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 기뻐하며 즐겨 인용하지만, 그것이 무의미했다는 경제학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곡학아세라고 치부하며 무시한다. 반면 A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사람은 그것이 효과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나면 그 방송사로는 더는 채널을 돌리지 않겠지만, 앞서의 경제학자의 의견을 접하게 되면 그 학자의 이름을 구글링하여 각종 칼럼들을 탐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풀어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정치나 시사 이슈에 관심이 많은 위키러라면 확증편향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이는 흔히 우파 유권자들이 한경오를 신문 취급도 하지 않으려 하고, 좌파 유권자들이 조중동은 죽어도 읽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논조의 신문을 나란히 놓고 교차검증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도전적인 정보를 꺼린다. 이것은 대학교 연구실에서부터 저널리스트의 보도 현장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특성이다. 심지어 이 위키의 특정 문서 내용들로부터 불쾌함을 느끼는 위키러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 확증편향을 이겨내고 올바른 지적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 또한 확증편향에 빠져들기 쉬운데, 편견을 가진 국가 등에서 무슨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국가/민족 전체를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미리 일부드립으로 비꼬면서 일반화를 정당화 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되는 개인/집단은 상대적 소수가 맞다. 단지 상대적 다수는 뉴스를 타지 않아서 묻히는 것 뿐이다. 이러한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사건사고의 주체(소수)가 누구인가를 봐야 할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민족의 여론(다수)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총기 난사 범죄를 저지른 조승희는 한국인이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의 범죄를 부정적으로 본다. 따라서 조승희가 대부분 한국인들을 대변할 수 는 없는 것이다. 사실 엄밀한 학술적 연구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키배들은 거의 90% 이상이 확증편향에 기반한 주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성차별에 대해 얘기하차면 남성은 남성이 차별받는 요소만 들고와서 여성상위시대인데 남자만 책임이 많다고 주장하고, 반면 여성은 여성이 겪는 차별들만 모아놓고 이렇게 여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것. 서로가 다른 근거에 기반해 자기가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니 합의점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각 성별이 모두 이득보는 요소와 손해보는 요소가 따로 존재한다고 봐야 가장 정확할 것이다. 유사한 다른 개념으로 근접편향(proximity bias)이 있다. 이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친숙하고 가까울수록 그것에 호의적인 정보만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2014학년도 수능 영어 B형 36번에서 이 편향을 주제로 낸 지문이 등장했다. 1961년 영국에서 있었던 A6 사건[2]과 1980년 호주에서 있었던 딩고 사건[3]은 확증편향의 폐해를 제대로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_나무 위키
-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한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며…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 우리들은 모두 세상을 자신의 선입관에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 상반된 관점은 필연적으로 생각하는 수고로움을 동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죠.
- 만약 누군가가 유능한 교수라면, 그의 첫 번째 임무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의 가치입장의 정당화에는 불리한 사실들ㅡ즉, 학생의 당파적 견해에 비추어볼 때 학생 자신에게 불리한 그런 사실들ㅡ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모든 당파적 견해에는ㅡ예를 들면 나의 견해도 포함해서ㅡ이 견해에 극도로 불리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만약 대학교수가 그의 수강생들을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면, 그는 단순한 지적 업적 그 이상을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너무나 소박하고 당연한 일에 대한 표현치고는 어쩌면 너무 장중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감히 그것을 ‘도덕적 업적’ 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습니다.
- 제임스 핸래티가 다시 돌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털어놓아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에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니까요.
- 현명한 자는 보는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걸 본다.
출처:
https://0check.tistory.com/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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