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변에 하나밖에 없는 휴게소, 나루터의 주막, 모회사의 공급을 독점하는, 재벌 자녀들이 차린 비공개 회사같은 것이다. 가운데서 영수증만 발급해주고 이익을 떼어가는 이런 회사를 ‘검문소’라고 부른다.
삼성의 웰스토리
면죄부
고약한 귀족 하나가 면죄부를 팔러 다니는 신부에게 ‘그걸 사면 앞으로 지을 죄도 면죄가 되는가’하고 물었다. 신부는 ‘이 면죄부는 대단히 영험하므로 당연히 된다’고 말했다. 비싼 값을 치르고 그것을 산 이 귀족은 판매를 끝내고 마을을 떠나는 신부를 쫓아가 두들겨 패고는 면죄부를 판 돈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다. 나중에 귀족은 잡혔지만, 그대로 풀려났다. 면죄부의 영험함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젊긴 했지만 그 이론적 깊이로 당시에 매우 존경받던 신학자였다. 그는 95개조 반박문을 교회문에 내걸었다. 이 반박문은 그때쯤 나타나 있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14일 만에 유럽의 독일어권 전역에 퍼졌다.
그들이 읽은 성서 어디에도 ‘면죄부’는 없었다.
경로독점은 결국 무너지게 돼 있다. 국도 옆으로 넓은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리면 국도변의 휴게소는 순식간에 폐가가 되고, 강에 다리가 놓이면 나루터도 역할을 잃는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면 재벌 자식의 검문소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전형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가로채는 횡령범죄이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3세, 4세들이 줄을 지어 감옥을 다녀오는 이유는 경로독점이 무너진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결과다.
판결문
법원의 판결문 미공개도 있다. 한국사회에선 사실상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율이 0.3%쯤 된다.
일제 강점기는 더 말할 것이 없고, 그후로도 한참동안을 ‘보여줘봐야 까막눈’이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그러니까 보여주나 안보여주나 별 차이가 없던 때다. 그때 정립된 관행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쉽게 전달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검색엔진이 굉장히 발전했다. 아무리 많은 판결도 순식간에 찾아낸다. 공공데이터로 공개를 한다면 굉장히 멋진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의 모든 판결에 대해 온갖 통계를 뽑아볼 수 있다.
수십년간 한국사회의 법감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판례들간의 모순이 얼마나 있는지, 징벌의 형평성이 깨진건 없는지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영어로 된 인공지능 판결쪽은 상당히 발전이 돼 있지만 한글분야는 아예 없다.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판사들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다. 판결간의 모순을 없애고, 양형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어 사법부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예비 법조인들이 공부를 하는데도 아주 좋다. 분야별로 최고의 판결들을 뽑아서 공부를 할 수 있고, 비슷한 판결을 할 때 참고로 삼기에도 아주 좋다. 판결을 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몇 년 전에 변호사 1,586명에게 조사한 결과는 93.7%가 판결문 공개를 지지한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 조사에서는 응답한 판사 1,117명 중 미확정 형사사건 판결문 공개에 대해 찬성한 건 20.6%에 불과하다. 변호사들의 상당수가 전직 판사다. 법복을 벗자마자 의견이 바뀐다면 논리외의 무엇이 있다는 뜻이다. ‘선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판사들은 대부분 ‘개인정보 보호’를 근거로 공개에 반대하는데, 이런 주장은 ‘지구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해가 서쪽에서 떠’라는 말처럼 들린다. 미국, 영국과 같은 나라는 불문법이다. 명문화된 법이 있는게 아니라 과거의 판결 즉 판례를 따라 판결을 하는 나라다. 당연히 ‘미확정 실명 판결문’을 전면 공개한다.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문을 당연히 공개한다는 논리다. 미국은 판결 이후 24시간 내에 온라인 사이트에 미확정 판결문을 게재한다. 영국, 네덜란드는 미확정 판결문을 1주일 내에 공개한다. 영국과 미국이 프라이버시 보호가 우리보다 몇배나 엄격하면 엄격하지, 못할 리가 있나. 미국 영국이 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는데.
검찰
검사의 기소 독점도 일종의 경로독점이다. 일제시대 이래 편법으로 만든 제도가 반성없이 여기까지 와버렸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 Check & Balance다. 민주국가의 정부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소 독점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도 맞지 않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검사가 기소를 아예 하지 않아버리면 판결까지 갈 수도 없다는건 아주 이상하다. 견제도 균형도 깨져 있는 것이다.
“권력은 부패하기 쉬운 경향이 있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라고 아브라함 링컨이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현재의 검찰은 절대 부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돼 있다는 것이다. 개개 검사의 도덕성과는 무관한 얘기다.
실제로 검찰이 자체 인지했거나 독자적으로 기획한 수사의 경우에 무죄율이 일반 사건의 다섯 배나 된다. 그러니까 수사를 잘 하지도 못한다.
2000년 이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2013년 중수부 폐지 이후엔 중앙지검 특수부, 특별수사본부 등)에서 수사해 구속기소한 주요 권력형 비리사건 피의자 중 형이 확정된 119명의 대법원 판결 결과 무죄율이 10.1%.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인 병폐로 지목되는 판결 확정 전 처벌의 수단으로 구속이 악용되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서다. 조사 결과 이 가운데 12명, 10.1%가 무죄(핵심 혐의에 대한 일부 무죄 3명 포함) 판결.
같은 기간 일반 형사 합의사건 무죄율(2.3%)의 다섯 배. 검찰이 기소한 전체 사건 무죄율(0.58%, 2015년 기준)의 17배.
2004~2008년 5년간 검찰의 인지사건 수사로 기소(약식 기소 포함)된 14만675명 중 1심 재판 무죄선고자 비율도 일반 사건의 다섯 배.
1430명(1.02%). 반면 같은 기간 일반사건의 경우 전체 기소자 618만2677명 중 무죄선고자는 1만2833명(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