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늘을 드리우고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따라갈 때 - 이것은 우리가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숨 쉰다는 뜻이다. 이러한 묘사의 예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에 아우라의 붕괴를 초래하는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사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사정은 모두 날로 커가는 대중과 그 대중의 운동이 갖는 강도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사물을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끌어 오려고”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 대중이 바로 자기 옆에 가까이 있는 대상을 상 속에, 아니 모사 속에 ,복제를 통하여 전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날이 제어할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화보와 들어 있는 신문이나 주간 뉴스영화가 제공해주는 복제영상들은 상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상에서는 일회성과 지속성이 밀접하게 서로 엉켜 있는 데 반해, 복제물에서는 일시성과 반복성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아우라를 파괴하는 일은 오늘날의 지각이 갖는 특징이다. 이 지각은 “세상에 있는 동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너무나 커진 나머지 복제를 통해 일회적인 것에서도 동질적인 것을 찾아낼 정도이다. 이론의 영역에서 통계가 나날이 그 중요성을 더해가는 현상이 직관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실이 대중에 맞추고(정향하고) 대중이 현실에 맞추는 현상은 사고의 면에서는 물론이고 직관의 면에서도 무한한 중요성을 지니게 될 하나의 발전 과정이다. 이러한 제반 상관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고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인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의식에 기대어 살아온 기생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복제된 예술작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복제를 겨냥해서 제작되는 예술 작품의 복제품이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사진의 원판으로는 다량의 인화기 가능하다. 어느 것이 진짜 인화냐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술 생산에서 진품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그 효력을 잃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예술의 모든 사회적 기능 또한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기술 수준 때문에 예술에서 영원한 가치를 생산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영화는 개선 가능성이 큰 예술작품이다. 이러한 개선 가능성은 영화가 영원한 가치를 극단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연관된다. 영화는 성과의 전시 가능성 자체에서 일종의 테스트를 만들어냄으로써 테스트 성과를 전시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배우는 관중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장치 앞에서 연기한다. 촬영감독은 적성테스트에서 시험관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조명을 받고 연기하면서 동시에 마이크의 조건에 맞춘다는 것은 일급의 테스트 성과이다. 그 기량을 연기한다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그들은 영화배우의 인간성(또는 그들에게 비친 그 인간)이 기계장치 앞에서 버텨낼 뿐만 아니라 그 기계장치를 자기 자신의 승리에 복속시키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중

출처:

https://0check.tistory.com/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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